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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보통사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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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개발 연구원     김용훈 원장

 
 60세, 35세, 32세 엄마와 두 딸은 나란히 누워서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지치고 힘에 겨웠을까? 죽기 얼마 전까지 살아가려고 애썼지만 세 모녀에게 겹겹이 쌓이는 데미지와 어려움은 더 이상 풀 수가 없던 것이었다. 결국 최선을 다해도 변하지 않는 모녀의 삶이 가는 곳마다 벽에 걸리자 자살이라는 최선의 선택을 택하였다. 자살을 나쁘게 치부하는 죽음이 있다면 세모녀의 자살은 고귀하기까지 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60대 어머니는 1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그 후 온갖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평소 지병이 많았던 아픈 딸들을 간병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평범하지도 못했던 가정에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빚마저 생겨 생활은 점점 궁핍해졌고 두 딸은 생활고로 인해 사용한 카드가 한도를 초과하고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두 딸은 지병으로 정상적 사회생활을 할 수 없어 엄마의 책임은 점점 증가하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한계에 도달하자 어머니는 모두가 사라지는 것이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자 오히려 이승보다 저승이 더 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다만 남들과 다른 자살의 형태를 띤 모녀의 죽음은 단순히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씁쓸한 죽음이 아닌 죽음 앞에서도 도리를 다하는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남긴 유서이자 메모의 내용으로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글에 모든 국민에 뇌리와 가슴에 시큼한 가슴앓이를 하게 만들었다. 죽어야 하는 이유도 서글픈데 마지막까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챙기게 되는 기구한 삶이 한편으로는 너무나 안타깝고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의 최선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써 가며까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월세와 전기세, 수도세 등을 봉투 안에 넣어 두고 방안에 번개탄을 피우고 나란히 누웠을 때 모녀들의 머릿속엔 가슴 속엔 무엇이 담겨져 있었을까?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이 나라의 국민의 도리를 거르지 않고 살아가며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말 그대로의 선량하고도 모범적인 가정이자 사람들이었다. 어려웠지만 죽는 소리하지 않고 남에게 딱한 사정으로 손 한번 벌리지 않은 채 외로이 살아갔던 그녀들에게는 외려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저 주는 대로 받아먹는 야박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세상에 지치고 힘들었는지 살아야할 이유도 살아가도 되는 세 모녀가 세상에 민폐를 끼치기 싫어 세상을 등지지고 말았다. 사실 세상이 모녀에게 민폐를 끼친 것인지도 모른다.
두 딸을 데리고 있던 어머니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악착같이 살아가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다 크다 못해 30이 넘은 두 딸을 금치산자도 한정치산자도 아닌데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딘가 아픈 이유도 석연치 않아 확정 지을 수가 없으니 배제하더라도 어머니 삶은 참으로 고단하고 기고하기 짝이 없다. 넘어져 다 친지 한 달이 될 무렵 어머니의 선택은 조금은 이르고 서투른 점이 없지 않지만 아마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분명한 자극과 동기가 있는 것보다는 누적된 고단함과 삶의 불행이 희망을 꺽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남편과의 사별 후 그 험난한 세월을 지탱해온 끈기와 의지가 아쉬움을 더한다.
 
 
우리에게 이웃은 과거의 척박한 시절보다 더 메말라가고 옆집에서 나는 작은 소음에도 신경질적이고 과민하게 반응을 하거나 아예 소란과 비명을 질러도 쳐다보지 않은 작금의 세태가 어쩌면 모녀를 죽음으로 몰아 간지도 모른다.
만약 모녀에게 한마디 우려를 건네거나 안쓰러움으로 걱정이라도 해주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세상에 홀로라는 고립무언의 상태라 생각하고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데 조금은 어렵게 하지 않았을까한다. 10여 년 동안 모녀가 처한 상황에 관심보다는 과연 공과금과 미납금을 낼 수 있을까 라는 걱정으로 안부를 물어보는 고지서와 독촉금만 보낼 뿐 그녀들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럴수록 모녀에게는 희망보다는 절망과 외로움 고독에 의한 삶의 끈이 얇아지고 짧아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 탓만을 하기에도 사건의 설정이 조금은 부족한 면이 없지 않긴 하다.
 
지금의 시대가 어떠한가, 전국의 기초생활수급자가 백만이 넘어 간지가 수년이 지났고 신용불량자의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는 어린학생들과 어른들 또한 수백만이 이르고 있는 시점에 성년이 훌쩍 지난 두 딸이 조금 아프고 돈이 모이지가 않는다고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도 어머니의 입장으로서는 완전히 공감하고 납득하기엔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그녀들이 생전에 터를 잡고 있던 곳은 서울 송파구 석촌동으로 제법 부유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계획이 잘된 지역이라 할 수가 있다. 그런 곳이라면 집세와 공과금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비쌀  것이고 주변의 물가 역시 다른 곳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활고로 힘들어하면서 그곳을 끝끝내 벗어나지 않고 그곳에 눌러앉아 버린 어머니의 심정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 또한 최악의 선택인 자살이라는 동기치곤 아이러니하다.
 
두 딸의 지병과 힘든 생활여건이 당장 개선되지 않는 것이었다면 굳이 지척에 각종 편의시설과 문화시설이 있는 강남에서 값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그곳에 버틸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그곳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남편과의 사별이 어느덧 10년이 지났음에도 모녀에게는 바로 며칠 전 가정을 잃은 것처럼 척박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삶의 개선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그저 버티고 눌러앉아 누군가 잡아주기를 원했던 것이었을까?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두 딸 역시도 아직 나이가 젊어 얼마든지 불치병이 아닌 이상 관리하면서 벌이를 하는데 지장이 없었을텐데 아무런 일도 시작을 해보지 않고 살아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자신의 삶에 일어서려는 의지가 빈약하고 남편이 생존에 이 모녀들을 어떻게 생활하게 해주었는지를 추측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온통 의구심 투성인 모녀들의 심리적 상태와 주변의 무관심이 이런 사건을 복합적으로 만드는데 자극을 주었고 결국엔 애꿎은 정부의 복지문제가 거론되며 주변과 개인문제가 아닌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관리차원의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 한 개인으로서 치명적인 구설수와 주변의 무관심이 만든 문제를 또 한 번 정부와 정권의 욕을 해대며 언론과 방송들이 수군대고 있다.
 분명 그들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훌륭한 의지와 노력이 없어 생계를 변화시키는데 결격사유가 되었고 그러한 점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은 본인들 스스로 철저하게 고립과 단절을 설계한 것이 틀림없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거나 생존하려는 의지 없이 방치하다 갈수록 반복되는 삶이 고단해서 그 지루함과 뻔 한 나날이 그들이 참지 못한 자살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사정을 알고자 했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주변의 맹한 눈초리 역시 거기에 한 목한 것도 사실이다.
 
 
개인도 이웃도 어떠한 라인도 없는 이 사회풍토가 모녀의 삶을 척박하고 비참한 말로를 만든 이 사건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 생각해야할까?
 
힘들고 아파도 악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철저하게 개인주의로 외톨이로 살아간 모녀의 이야기도 딱하지만 주변에 도움이 되는 그 어떤 사람도 없는 지금 우리의 이기적인 현실도 비통하기 짝이 없다. 포기도 빨라지고 의욕도 약해진 우리의 모습과 남이 어찌되든 언론과 인터넷에 비춰지면 그때서야 안됐다는 가십거리로만 치부하는 사건으로 기록되는 우리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고 개선해야한다. 이대로 갔다간 정말 살맛나지 않은 사회로 변질되고 만다. 사회적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금방 낙오되어 일어나기 힘든 사회구조가 되어버린 우리 현실 속에서 무엇이든 쉽고 바른 결정 그리고 순간의 기억과 잔상이 욱하고 나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엉뚱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좀 더 천천히 부지런하게 걸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모녀의 죽음 앞에 우리 모두 무관심과 이기적인 사고 그리고 지나치게 바르게 흘러가는 문명화가 얼마나 우리사회를 찌들고 손쉽게 만들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세상에 외마디 원망도 넋두리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집 주인에게 한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간 모녀에게 명복을 기원하며 주변의 사람냄새보다는 남의 비리와 인기에만 연연하지 않는 과거의 보통사회가 되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보통사회가 그리운 건 어쩌면 필자만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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